안녕하세요. 저는 오늘부터 5주동안 매주 발행되는 <서툰살이>의 에디터 감이에요.
매월 상담소와 열림터의 후원회원분들께 정기적으로 보내드리는 뉴스레터는 상담소와 열림터의 모든 활동과 사업을 빠짐없이 총망라해서 다채롭게 구성하고 있어요. 그래서 볼거리도 많고, 링크로 연결되는 내용들이 정말 많아 스크롤 압박이 굉장합니다. <서툰살이>는 “성폭력생존자의 주거권과 자립” 그리고 “생존자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집 또같이” 이야기에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기관명에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뭇 사람들의 시선따위 신경쓰지 않는 호기롭고 굳센 여성들의 집합소였습니다. 이런 상담소의 부설기관인 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는 집요한 가해자들로부터, 끊어지지 않는 성폭력 피해로부터 자유롭고 안전하고 싶은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의 집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열림터는 1년(연장 시 최대 2년 6개월)만 거주할 수 있는 중장기 비밀쉼터이기에, 열림터에서 생활하는 중에도, 퇴소하고 난 후에도 생존자들의 삶이 평탄하고 평안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간 생존자들의 일상회복과 안정된 거주, 그리고 자립과 관련해 열림터가 가지고 있던 고민들과 찾아낸 실마리, 그리고 도전과제들을 <서툰살이>에서 구독자님들과 나눠보려고 합니다. 하나씩 꺼내볼테니, 찬찬히 들여다보고 공감해주실 수 있을까요?
<서툰살이> 첫 번째 이야기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생활인 L이 들려줍니다.
성폭력피해생존자인 L에게 집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왜 집을 나와 다른 공간을 찾을 수 밖에 없없는지, 그녀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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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열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생활인 L입니다. 생존자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집 또같이 설립을 기념하여 뉴스레터에 투고를 부탁받았는데요. 제 말이나 상황이 성폭력 생존자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비칠까, 혹시나 이 글로 누군가 날 알아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지만… 최대한 솔직하게 '제' 얘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열림터에 들어오려고 처음으로 생각한 것은 올해 초였어요. 당시 상담하고 있던 상담소를 통해 열림터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이유들로 당장 본가를 나오기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원가정이 아닌 하나의 선택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어요.
엄마와 저는 서로를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엄마는 제가 방문을 닫고 들어가 있을 때면 제가 언제 울면서 뛰쳐나올지 몰라 겁이 난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저는 문 닫힌 방 안에서 엄마가 설거지하는 소리를 들으며 갑자기 엄마가 방문을 벌컥 열고 저에게 분노를 쏟아낼 것 같아 불안해했죠. 그동안 서로에게 건넨 말과 눈빛, 행동 하나하나가 쌓인 결과였습니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닌 저와 엄마의 불안한 일상이 그나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아빠 때문이었습니다. 아빠가 아직 저에게 일어난 일(성폭력사건)을 몰랐기에, 가족 사이에 흐르는 암묵적인 비밀 유지의 원칙이 있었어요. 아빠는 어느 순간 변해버린 제 상태에 대해 궁금해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제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아빠마저 모든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 제 안의 남은 감정들이 폭주하기 시작했죠. 그러던 어느 날, 손 한쪽에 멍이 들게 되었어요. 그렇게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순간 깨달았습니다. 같이 있다간 서로에게 더 이상 나은 날들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란 것을요. 슬픔, 분노, 원망, 무기력, 우울, 불안과 같은 감정이 가족 내에서 탁구공처럼 쉬지 않고 튀겨댔습니다. 그 감정의 고리를 끊어내야 했어요. 더 이상 누군갈 미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치게 지쳐있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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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을 당하는 몇 년의 세월동안 집은 저를 보호해주지 않았습니다. 제 슬픔을 방치했고, 제가 이해가 안된다며 저를 비난했죠. 저조차도 제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알지 않으려 했습니다. 알아봤자 얘기할 수 없고, 알아봤자 나아지지 않을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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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항상 알아서 체념했습니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제게 있어 기만이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이어지기에, 더 나아지길 바랐습니다. 그만 아프고 싶었어요. 그만 힘들고 싶었어요. 내 몸이 나를 그만 싫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몸이 나를 용서하고 스스로 치유하길 바랐어요. 하지만 저보다 더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부모님께 이 이상의 기대를 할 수 없어 집을 나오기로 결정했습니다.
따뜻한 집. 평화로운 집. 물건들이 잘 정돈된 집. 긴장하지 않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 볕이 잘 드는 집. 내 물건들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집. 내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집.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감정들을 건강하게 공유할 수 있는 구성원이 있는 집을 원했습니다.
너무 이상적인가요? 하지만 대부분은 이미 이루어진 것 같아요. 열림터에 오고 나서부터요.
열림터는 제가 바라던 이상적인 집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겪을 수 밖에 없는 불편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이곳의 사람들이 제 상황과 성향을 아예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서로 초면이니까요. 입소 후 일주일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는데, 서로 소통이 원활했다면, 제가 겁을 좀 덜 냈다면 덜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두 번째는 온도에 대한 거였는데, 각자 추위를 타는 정도나 더위를 타는 정도가 달랐어요. 저희는 그래도 어느정도 타협지점이 있었지만, 이것도 많이 달랐다면 더 힘들었겠구나 싶었습니다. 비슷하게는 청결도의 문제도 있었어요. 사실상 생활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다보니 예측 가능한 불편함들은 모두 어느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편이 불안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제가 입소하고 만난 생활인들은 모두 서로의 불편을 조금씩 감수할 줄 아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이에요. 잠깐 같이 지낸 것일 뿐인데도 떠나간 얼굴들을 생각하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 또한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초보 입소자라 알게 모르게 받은 배려가 많았던 시간인 것 같아요.
열림터에 온 지 4개월 가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이곳 생활에 많이 익숙해진 것 같은데, 빈 자리들은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것 같아요. '나도 혼자 살아낼 수 있구나, 다른 이들도 혼자 살아내고 있구나, 하지만 정말 혼자는 아니구나, 누군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구나, 나는 지금 안전한 곳에 있구나, 하지만 여전히 나는 슬프고 힘들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살아내가고 있구나...' 열림터에서의 경험에 대한 마음이 내일부턴 또 어떻게 바뀔지 몰라도 일단 오늘의 마무리는 이 정도로 해도 될 것 같아요.. 생활인들과 함께 제가 좋아하는 뮤지컬도 보고, 마사지도 받아보고, 배워보고 싶었던 훌라도 체험해볼 수 있게 다양한 기회가 열려있는 열림터의 프로그램들이 요즘 참 재밌고 유익했거든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다음에 또 뵐 기회가 있다면 글로 얼굴 비추겠습니다. 모두 별 일 없는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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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살이>의 시작을 열어준 생활인 L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집"이 모든 이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얼핏 굉장히 슬프고 아픈 이야기같습니다.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평안하고 자유로운 "집"을 찾아 떠난 이들은 빛나는 용기를 가진 생존자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열림터라는 공간이 오늘의 L에게는 만족스럽지만 내일의 L에게는 어려운 숙제일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다음 주에는 어렵사리 찾아온 쉼터라는 공간이 모두에게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쉼터라는 이름의 “시설”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다음 주에 이어가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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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를 읽은 여러분의 소감을 나눠주세요. <집들이 방명록> 코너에서 소개해 드릴게요. 주변에 널리널리 입소문 내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그럼 다음주에 다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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