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두 번째로 인사드리는 에디터 감이입니다.
지난 주 생활인 L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열림터를 찾아온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은 그녀처럼 각자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야기와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답니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성폭력피해자의 모습은 하나같이 슬프고 고통스럽고 힘겹기만한 모습이지만, 실제로 열림터에서 만나는 생존자들은 힘든 와중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살아갈 곳과 사랑할 사람들을 찾아 각자의 삶을 힘있게 일구어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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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터는 주거공간을 거점으로 일정 기간 주거와 생활 전반을 지원합니다. 그런데 열림터가 왜 또다른 집인 <또같이>를 만들었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성폭력피해자를 잘 지원하고, 안전하게 보호하면 되는 열림터는 그 역할을 충실히 잘 하고 있는데 왜 새로운 집을 마련했는지 차분하게 설명해드리고 싶었습니다. 4년동안 열림터에서 생활인들과 지내며 쉼터의 한계에 대해 깊이 고민해온 수수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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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같이 살아본 사람의 숫자, 헤아려보신 적 있으세요? 누가누가 더 많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봤나 대결이 벌어진다면 저는 우승할 자신이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함께 살기’를 해보았거든요.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과 살아봤다고 자부하던 저는, 열림터 활동가 채용공고가 떴을 때 다소 자신만만했습니다. ‘모든 성폭력피해생존자에게 열려있고, 생존자들의 새로운 삶의 여는 터’ 라니.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사는 집이로구만, 자신있어! 라고 생각한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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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열림터 활동가가 된 후, 쉼터는 단순히 여러 사람들이 사는 집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쉼터는 생활인을 보호하고, 치유와 회복을 지원하는 목적을 가진 공간입니다. 쉼터 활동가와 생활인들은 쉼터라는 주거공간을 매개로 함께 사는 사람들이지만, 서로 다른 위치에서 쉼터를 공유합니다. 생활인들이 쉼터에 거주하는 시간은 일시적이거든요. 그렇기에 쉼터는 생존자의 비상구나 임시정거장 같은 공간이지, 온전한 집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쉼터에는 생활인을 보호하고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들이 있습니다. 규칙과 약속의 형태로 존재하는 이 장치들은 안전을 담보하기도 하지만, 생활인의 자유를 통제하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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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볼게요. 열림터에는 여러 생활 규칙이 있습니다. 귀가와 취침시간을 지키는 것, 치유회복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등요. 이 규칙은 생활의 루틴을 만들어 트라우마에서 회복하고, 미래를 여는 길을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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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여러 명의 사람이 같이 살기 위해서 존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 많은 또우리들이 열림터를 사랑하지만, 열림터를 미워했다면 생활규칙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쉼터는 ‘내가 주인이 되는 집’은 아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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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열림터는 비공개 쉼터입니다. 가해자로부터 생활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비공개 쉼터이기 때문에, 생활인들은 자신의 친구와 연인을 쉼터에 초대할 수 없습니다. ‘나 어디 살아’ 라고 말하기 어려운 곳이 과연 적절한 집이 될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고민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쉼터의 한계 때문에 열림터는 오랫동안 ‘주거권’의 맥락에서 생존자의 집을 고민해왔습니다. 열림터와 함께 저도 어떤 집이 좋은 집인지, 어떤 집이 생존자에게 필요한지 고민을 키워나갈 수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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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터에는 공동체로서의 즐거움이 분명 존재합니다. 돌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란 점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도 있구요. 이건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내가 밥을 잘 챙겨먹었는지 살펴주는 공간. 아플 때 유자차와 약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 집. 슬프고 머리가 아플 때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 이 모든 관계가 없이 오롯이 혼자 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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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철폐운동판에서는 일찍이 자립을 넘어 ‘연립(=함께 서기)’으로 가야 한다는 통찰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그동안 자립이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으로 여겨지고, 그 능력을 갖춰야지만 자립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되어왔단거예요. 하지만 사람은 본래 의존하는 존재라는 거죠. 열림터가 비록 쉼터라는 한계를 가지지만, 그럼에도 이곳에서는 의존하면서, 서로 보살피면서, 함께 돌보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배웁니다. 생존자에게 필요한 집 역시, 내가 ‘나’가될 수 있으면서 서로 의존하는 공간이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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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문을 여는 또같이가 그런 집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같이에 사는 또우리들이 이 공간을 열림터를 넘어선 새로운 ‘함께 살기’의 장을 열 거란 사실을 믿습니다. 열림터를 지켜봐주신 여러분, 또같이에 관심을 가지는 모두 성폭력 생존자의 새로운 집에 많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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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의 글을 읽고, 또같이 라는 공간이 좀 더 궁금해지셨나요? 이 공간에 대한 설명을 (추가) 어떻게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래 <’또같이’ 입주자 모집 안내> 를 읽어보시면 감이 좀 잡히시지 않을까 싶어 공고문 중 일부를 가져와봤어요. (이미지 눌러 공고문 자세히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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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에 이 공고를 낸 이후, 생존자의 자립을 지원하는 집 또같이가 12월 중순에 입주자 선정 절차를 모두 마쳤답니다. 또같이는 지금 한창 공간을 정비하고, 식구들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어요.
다음 주 서툰살이는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 많은 생활인들과 또우리들을 만나온 은희 활동가가 열림터를 떠난 또우리들이 겪는 자립의 어려움과 생존자들의 주거불안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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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분들의 소감을 나누는 코너! 집들이 방명록입니다.
지난 주에 보내드린 생활인 L의 이야기를 읽은 구독자 분의 소감, 같이 읽어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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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느날 동요 <즐거운 나의 집>을 듣고 집이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라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 떠올랐어요.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저는 사람들과 만나는 집 밖의 공간이 더 편했는데, 제가 외향형 인간이라 그런 줄로만 알았거든요. 지금의 저는 독립 6년차로 집순이가 되었고, L님처럼 꿈꾸었던 이상을 대부분 실현시켰답니다. L님과 저처럼 30년차 열림터, 새롭게 탄생할 또같이 모두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우리들의 쉴 곳이 되길 응원할게요!! 다음 서툰살이 이야기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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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를 읽은 여러분의 소감을 나눠주세요. <집들이 방명록> 코너에서 소개해 드릴게요. 주변에 널리널리 입소문 내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그럼 다음주에 다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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